블로그 로그를 보면, 내가 2021, 2022년에 작성한 세종과학 펠로우쉽 후기라는 글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사실 그 글들은 후기라기보다 그냥 나의 다짐(?)에 가까운 글이라 준비하는 사람에게 전혀 큰 도움이 될 거 같지 않고, 어그로만 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선정되었던 두 번의 후기들과 노르웨이에 온 이후로 느낀 것들을 보태어 내가 부족했던 부분들을 짚어 보았다.
- 해당 전공분야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당 프로젝트의 목적과 전체적인 방향성이 제시되어야 한다.
아무래도 자신의 전공분야는 오랫동안 공부를 해 왔고, 더욱이 과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 많은 글들을 읽고 아이디어를 내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많은 배경지식들을 가지고 글을 읽게 된다. 하지만, 학문의 범주는 넓고 전공의 깊이는 깊어지기 때문에 심사위원이 나와 같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심사를 할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따라서 충분한 설명이 없는 지나친 디테일은 심사위원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너무 큰 그림만을 장황하게 나열하는 경우, 심사위원으로 하여금 제시된 계획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 핵심 요소 및 전체 아웃라인을 잡을 수 있는 그림을 제시하여야 한다.
제안서에 영상 첨부가 가능하다면, 아마 많은 과학자들이 유튜버가 되지 않을까? 영상만큼이나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정보를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제안서에 글과 그림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부이고, 잘 디자인된 그림은 상당한 양의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할 수 있다. 물론, 그림으로 설명이 모든 것들을 담아낼 수는 없지만, 전체를 투영할 수 있는 그림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과제에 대해 심사위원을 깊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논문을 뒤적거리다 보면, 잘 만든 figure abstract가 논문을 관통하기도 하는데, 그와 같은 overview를 제시한다면 관심과 이해도가 상승하여, 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진정으로 피드백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과제를 작성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작성하고 제대로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같은 실험실의 동료나 교수님에게 피드백을 부탁하긴 하였지만, 이는 사실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는 제안서의 피드백을 해주는 직원이 따로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자유롭다. 그래도 여전히 세부적으로 많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비판적인 사고로 나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좋은 동료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 선정되었다면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하고, 미선정되었다면 원인은 분석하되 낙담하지 않는 것이다.
연구자는 연구 행위를 통해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사회 및 과학의 발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자신이 기획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비가 있어야 가능하며, 따라서 자연스레 경쟁이 생긴다. 또한 때때로 이해관계 또는 사회현상에 따라 분야에 대한 투자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미선정되었을 때는 흘려보내야 한다. 물론, 당장에 프로젝트가 종료될 예정이고 막다른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선정되지 못하면 부정적인 마음이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나에게 2022년 과제 결과 발표 때가 그랬다. 국외연수는 종료될 예정이었고, 세종과학 펠로우쉽은 미선정되었으며, 해외포닥 자리는 불확실했다. 아마도 그런 상황에 심란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러니까, 미선정되었다면,심사위원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나의 글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다시 바라보고,
다음 기회를 위해 독립 연구자로 더욱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된다.
여전히 배우고, PI 들의 좋은 면을 닮고 싶은 게 많은 포닥이다. 인생의 좋은 기회들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연구들을 계속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