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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기록장93

23.09.11 언젠가 식사를 마치고 벚꽃이 핀 교정을 걸으며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은 이 길을 걸으면 어떠한 감정이 드시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오랜 시간 변함없이 피고 지는 길 위에서 선생님은 그런 감정?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 하신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20대에 가장 많이 오고 가며 걸었던 그 길 위에서 계절에 따라 수많은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봄에는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이 아름답기도, 아프기도 하였고, 초록빛을 간직하는 여름은 시원하였다. 또 선선한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은 쓸쓸하다가, 텅 빈 겨울에는 지난가을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추억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낯선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살게 되면서,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조용한 공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만의 상상이나 소.. 2023. 9. 11.
23.08.13 여름휴가의 마무리와 재충전, 노르웨이로 어머니가 오셔서 약 일주일간 시간을 같이 보내기 위해 조금 늦게 휴가를 신청하였다. 일단 나의 경우 일 년에 25일의 휴가 기간이 주어지고, 작년 계약 시기가 조금 늦었던 나의 경우에 올해 19일의 유급 휴가가 주어졌다. 그중, 올 겨울 친구들이 왔을 때와 lofoten으로 여행을 간다고 써서 남았던 15일의 절반 가량을 사용하였고, 그 결과 이곳에 온 이후로 가장 오랜 시간 학교로 출근하지 않았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내가 오슬로에 지인이 오면 하는 것은 오슬로 패스를 사는 것이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오슬로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고, 같은 박물관을 세 번이나 가면서도 매번 재미있는 것은 아마 각기 다른 향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겨울에 .. 2023. 8. 14.
선배 행복해요? 다양한 고민들이 많을 시기에 후배가 던진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킨다. 현재 느끼는 추상적인 감정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옆에서 조잘조잘 물어보던 사람도 생각이 나서 글을 적어본다. 행복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고, 또한 개인의 역할에 따라서도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나를 여러 가지 조각으로 나눠보면, 외국인 노동자, 포닥, 미혼의 삼십 대 중반 아저씨, 자유로운 영혼, 아싸, 불효자 등 수많은 조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떠한 특정 조각에서 가까운 시간의 범위 안에서 힘들 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찾아오는 너무 지치고 힘든 순간들이 있지만, 길고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지켜본다면 추구하는 행복의.. 2023. 7. 24.
무제 내면 깊숙이 자리한 모퉁이 속에 테두리를 그리고 조각한 시간들 기억 속에 불어넣은 숨결은 애틋하게도 차갑다. 남김없이 타버리고 새까맣게 남은 불씨의 흔적은 힌트조차 없었다던 침묵의 의미가 아니었던가. 우스꽝스럽게 남아 있는 나의 모습과 반뿐인 그림자 스쳐가는 바람에서 느끼는 향기와 깨져버린 접시 공허한 상실의 시간 속 포개어진 이탈의 흔적이 반복되는 굴레라면 그러하리. 2023. 7. 13.